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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애정 어린, 여기, 지금, 은 항상 흔들린다. 그럼에도,


/ 이원호_시각예술가




<여기와 지금이 구별되지 않는 곡면>은 이원호작가와 가천대학교 7명의 학생들(김소연, 김양현, 김우섭, 김혜지, 박민정, 윤선경, 이덕행)이 함께 진행하는 인터뷰 프로젝트이다. 광주대단지 사건을 기점으로 이 지역에 층층이 퇴적된 이주(移住)와 정주(定住), 그리고 지금의 삶의 터전이 되기까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또는 집단과 집단 간 존재했던 다양한 순간들을 마주한다. 필요에 의해 선택되고, 역사적으로 기록된 사료들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진위여부를 가릴 수 없는, 특히 여성들의 구술을 통해 이 지역이 남긴 그 간의 흔적들과 현재를 미시적으로 접근하고, 들여다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2019년 <태평 빈집프로젝트: 사라지지 않는 1>로 인연을 맺은 태평동에 대한 시선은 겨우 1년 사이에 또 다시 방향을 잃는다. 도시가 이윤을 추구하고, 스스로의 존립을 위해 발전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다. 그리고 선택과 배제는 그 당연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취하되, 그렇지 않은 것은 과감히 지우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토대들이 흔들리고 우리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개인들은 선택된 존재가 되기 위해, 생존을 위해 집단에 기대는 전략을 취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어쩔 수 없이 홀로서야 하기도 한다. 이제는 그 시간과 경험을 온전히 몸으로 체화하고 새기고 있는 사람을 접하는 게 쉽진 않지만, 50여 년 전 도시에서 밀려나와 그렇게 오롯이 홀로서기와 오랜 인내를 통해 자리 잡은 곳 중에 하나가 이곳 태평동이다.

우리는 60년대 후반부터 70-80 년대 까지 이주(移住)와 정주(定住), 분기(奮起) 등 굳이 그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기록보다는, 직접 체험하지는 않았더라도, 지금까지 삶의 흔적들과 녹록치 않은 시간들이 층층이 퇴적되어 있는 장소로서, 이제는 애정 어린 삶의 토대가 된 태평동을 기록하고자 한다. 물론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삶은 그 시간의 언저리에 얹히거나 맞닿은, 그리고 치열했던 생존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삶의 터전을 구축하면서 체험한 다양한 시층의 그들만의 소소한 이야기들이다. 거시적인 관점보다는 개개인의 체험, 즉 이 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하여 살고 있는 이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매개체로 이 도시를 미시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우리는 이 지역을 수시로 방문하고, 만나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제법 견고했던 문들이 언젠가부터 열리기 시작하며 틈새를 내어준다. 사실 그 틈새는 좁지도, 작지도, 단단하지도, 우울하지도 않음을 알게 되는 순간까지 가천대 학생들의 두드림은 별도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그 자체로도 멋진 퍼포먼스다.




어쩌다가 애정 어린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이 지역의 여성들의 시각을 중심으로 다룬다. 남성들의 체험담이 개인과 국가사가 구별되지 않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종종 경험한다. 그들의 개인사가 자주 국가적 사건의 진전과 그 서술에 맞춰 이루어지는 것에 반해 여성들의 기술은 본인의 가족 구성원들의 역사에 초점을 맞춰 전개되곤 한다. 더구나 사람이 살 수 있는 기본적인 물리적 인프라도 갖추지 못했던 터전에서 여성들 역시 생계전선에 적극적으로 뛰어 들어야 했고, 안과 밖을 책임져야 했던 그들이 감내한 무게는 쉽사리 상상하기 힘들다. 물론 그 보다 한 참 후에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다루고 있지만 그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인터뷰를 통해 이 지역의 역사를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구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았거나 어쩌면 너무 당연시 되었던 여러 차원의 위계 속에서 항상 한 걸음 뒤에서 세계를 관망해 온 그들의 시선으로 관념적인 개발과 도시이야기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들여다보지 못했던 각 개인들의 삶과 충돌, 생존에 관한, 내밀하지만 현실이었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함이다.

여전히 누군가는 이 도시를 끊임없이 흔들고, 개인들은 흔들리기도 하지만, 학생들이 최근 잦은 만남을 통해 가져온 여러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지금의 도시와 그들의 관계는 “어쩌다 보니 정이 든” 으로 표현된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과 개인적으로 유의미한 사건들이 쌓여 이제는 애정 어린 터전이 된다. 이런저런 이유를 풀어낸 그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애착관계가 형성된 이 도시를 기존과 다른 시선으로 새롭게 바라보고자 한다.


태평화원

나는 이 지역에 있는 가천대학교에서 꽤 오랜 시간 강의를 해 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외부인의 시선으로 이 지역에 대한 단상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2019년 <태평 빈집프로젝트>에서는 이 지역에 사는 학생들에게 협업을 요청했고, 내부의 시선으로 접근해보고자 했던 것이다. 태평동을 그들과 함께 긴 호흡으로 둘러보며, 잦은 충돌이 야기되는 골목길 주차문제와 부족한 녹지에 대한 지역 내 이슈를 다뤘다. 우선 이 프로젝트는 개인의 주차 영역을 선점하기 위해 가져다 놓은 주차금지 표지판과 우리가 준비한 의자의 교환 과정을 통해 사유와 공유의 영역을 환기시켰다. 이어 교환한 주차금지 표지판을 오브제로 활용해 인공정원을 조성함으로써 주민 쉼터가 제공되었다.


안과 겉이 구별되지 않는 곡면

이번 인터뷰 프로젝트 역시 이 지역을 생활공간으로 삼고 있는 7명의 학생들에게 새롭게 협업을 청했다. 소연, 양현, 우섭, 혜지, 민정 선경, 덕행, 이들과 매주 1~3회 정도 인터뷰의 방향성에 대해 논하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가 지역에서 겪은 체험기 또는 부모님, 지인들 이야기 등을 기반으로 도시의 윤곽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조를 이뤄 태평동일대와 시장, 경로당, 복지관, 동네 슈퍼, 식당, 잡화가게 등을 돌아다니며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채록해 온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가져와서 탁자 위에 펼쳐놓는데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이리 저리 뜯어보는 것이다. 그러면 피상적인 이미지에 머물던 지역주민들의 삶과 개인의 체험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부터 튀어 나오기도 하고,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안내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군데군데 아직 떨어지지 않은 딱지 같은 오해와 편견을 걷어내면 우리의 생각들은 원점으로 회귀되고, 수집한 이야기들을 대상으로 각자의 생각들이 다시 재정립되기 시작한다. 온전치는 않겠지만 각기 다른 수많은 화자의 관점에서 하나의 도시를 대상으로 다시 바라보기를 시도하고, 쉽게 판독할 수 없는 이야기의 파편들을 재구성해 본다. 그러다 보면 이 지역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과 감정은 증폭과 응축을 거듭하고, 안과 겉이 구별되지 않는 곡면의 뫼비우스 띠처럼 논점은 공회전하기도 하면서 서로의 복잡한 시선과 가치관들이 충돌하게 된다.






기울어진 사회의 규범이 만든 조건과 기준

그들과의 대화에는 다양한 질문과 답변이 오가기는 하지만, 주가 되는 이야기는 지금의 삶의 터전에 관한 이슈이다. 대부분 대한민국의 동시대를 관통하는 이슈인 집과 부동산으로 이어지는 경향을 보이는 가운데, 그렇다고 해서 인터뷰어인 학생들이 가져온 그녀들의 이야기는 집이나 부동산에 관한 이야기로만 귀결되진 않는다. 수집된 각양각색의 그 내밀한 이야기들의 중첩에서 내비쳐지는 것은 당시(현재)의 ‘지금’과 ‘여기’가 이루는 권력구조 아래 집단과 개인, 가부장적 사회 속 위계와 권위, 기울어진 사회의 규범이 만든 조건과 기준인 것이다.


이러저러한 이야기

그렇다면 그녀들의 시선이 그들의 남편이나 같은 시공간을 겪은 남성들과는 사뭇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이야기는 내가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인터뷰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만난, 한국의 근대사를 직접 몸으로 체험한 남성들의 채록과는 달리 세세하면서도 복잡하고, 현실적인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청계천 근처 살던 곳으로부터 밀려나 처음 이주가 이루어졌을 때 제대로 지어진 건물도, 상하수도도, 도로도, 아무것도 없던 낯선 땅을 밟았을 때의 막막함과 절망, 희망에 대한 이야기, 또는 처음 도착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 때보다 별로 나아진 것 없었던, 단지 천막에서 좀 더 단단한 판자로 된 집들이 좀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하기 시작했던 70년대의 이야기, 아직 기본적인 도시의 기반 시설도 마련되지 못했던 판자촌 시절에 정착하여, 판자촌을 수리해주는 일로 일당 대신 쌀을 받으며 생계활동을 한 이야기, 온갖 잡화물과 과일 등을 서울에서 가져와 이주 지역민들에게 팔아 이윤을 남긴 시장장사 이야기, 분양 받은 20평의 땅에 옆집의 20평까지 구입해 건물을 짓고 살다가 부도로 전세 40 만원에 여덟 식구가 모여 산 이야기, 하루 몇 대 밖에 없는 교통편으로 성남에서 서울 동대문까지 출퇴근하며 봉제 사업을 일군 이야기, 어머니가 해주신 김치를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오다 거친 비포장도로의 덜컹거림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깨지는 바람에 버스 안에 김치를 쏟은 이야기, 고래심줄로 라켓을 엮는 제조하청을 받아 판자촌의 많은 아녀자들을 먹여 살린 이야기, 유년기를 보내고 지역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태평동에서 식당을 개업한 이야기, 개천과 지금은 행적을 알 수 없는 친구들 이야기, 어렵게 구한 집을 전세를 놓으며 자신들은 더 작은 세를 옮겨 다닌 이야기, 수차례에 걸친 분양신청 끝에 드디어 분당아파트에 자리 잡은 이야기, 남편과 친구의 동업 그리고 사업 실패로 다툰 이야기 그리고 이제는 웬만큼 자리 잡은 자식들의 직장, 부동산 이야기 등 한 번 시작된 이야기는 시간 순으로 흘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며 가지각색의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때로는 개인의 이야기보다는 조만간 다가올 시간들에 대한 바램으로 수십 여분을 소비하기도 한다. 물론 처음엔 쑥스럽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본인의 이야기를 선 뜻 펼쳐 보인다는 게 낯설기도 하지만, “그 동안 안 해 본 것이 없어, 그 때는 고생 많이 했어”라는 말과 함께 시작된 이야기는 한동안 끊이질 않고 이어진다. 인터뷰의 주인공들은 태평동 또는 성남동이라는 공간을 매개체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통해 이 도시를 바라보는 색다른 지도를 제공한다.






그럼에도

개발에 대한 기대가 있는 장소라면 어느 곳이나 그렇듯 태평동 사람들 역시 재개발의 풍문 속에 낙후 된 시설을 겨우 견디며 지켜 온 게 이미 수십 년이다. 도시재생, 재개발, 가로주택정비사업 등 여러 사업들이 꽤 오랜 시간 동안 끊임없이 제기된다. 최근에 또다시 개발정책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몇 십 년 간 쌓여 온 삶의 흔적들과 보존해야 할 가치들을 지워내는 사업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만, 얼마 동안 이 공간에 지내다 보면 그러한 의문은 또 다른 의문으로 전이된다. 각자의 주장은 나름대로 모두 힘을 얻고 있고, 당사자가 아닌 사람은 쉽사리 입을 떼기가 힘들어진다. 누군가는 “그럼에도” 라고 하지만, 그 “그럼에도”가 과연 대체할 수 있는 무게의 한계는 어디쯤일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사람이 하나의 철학이나 가치관을 기반으로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다. 한 개인에게서도 다양한 삶의 방향들이 있고, 그 방향들은 스스로 자신 안에서 충돌하고, 타협하고, 모순을 드러낸다. 하물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욕망으로 구성된 도시는 어떠할까. 도시는 보다 수많은 모순으로 이루어진 유기적인 집합체이다.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개인들은 순간순간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도시의 불합리성과 충돌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시간의 진전은 한때의 중심축을 무너뜨려 질서를 파괴하기도 하고, 중요한 토대들을 뒤흔들어 우리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기대와 낙담의 경계에서 각자의 삶은 끊임없는 인내를 요구받게 된다. 그 인내의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과 타자, 집단 또는 도시 간에 쉽게 타협하기 힘든 순간들을 끊임없이 경험한다. 그리고 대립과 타협의 과정 속 개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그럼에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고, “그럼에도” 지우고자 하는 것이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선택이 앞으로 가져올 영향과 우리가 사는 공간에 대한 책무가 항상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기억지도

크로마키 천을 배경으로 하는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개인들의 소소한 체험담이다. 이들의 이야기들은 광주대단지사건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를 기점으로 파생된 파편화된 지류들이며, 우리는 그 지류들만을 모아 화면 안에 병치시킨다. 이야기는 순차적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렉 걸린 화면처럼 순간 정지되기도 하고, 다시 처음부터 재생되는 영상처럼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첫 이야기부터 다시 전개되기도 해서 시간의 흐름은 뒤죽박죽 뒤섞인다. 그리고 때때로 그들의 이야기는 화면 안에서 중첩되는 형태로 편집되어 혼재된 상태로 전개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각각의 서술은 특정 의미로 전이되지 않는 울림으로 공명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또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풀어 놓는 형식으로 교차 편집되어, 개인들의 작은 체험담과 기억들을 통해 어느 도시의 꼴라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영상에는 보이지 않지만 영상배경을 이루는 크로마키 천에는 실제로 인터뷰어의 이름과 그의 기억 속의 존재하는 지인들의 이름이 천과 같은 색감으로 자수로 각인된다. 인터뷰가 추가적으로 진행될 때마다 그 인터뷰어가 태평동에서 인연을 맺은,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이름들이 크로마키 천에 추가적으로 새겨져 그들만의 기억지도를 엮어 나간다. 이 작업은 태평동에서 40여 년 동안 수작업으로 자수가게를 하시는 사장님과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